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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과 작은 정보들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다. 그러나, 바뀐 삶을 살겠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by 우공80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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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로부터 입수된 Jeff Juit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Jeff Juit님의 이미지 입니다.

 

2023년 올 한 해도 끝이 났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2년 말에 쓴 글을 읽어보았다.

2022.12.31 - [일상생활과 작은 정보들] - 나는 아무렇지 않기로 정했다 - 2022년을 마무리하며

 

나는 아무렇지 않기로 정했다 - 2022년을 마무리하며

2022년을 돌이켜 보며.. 올해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일만 가득했던 한 해였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장모님께서 올해가 삼재(三災)니 조심하라고 하셨을 때, 그냥 웃고 넘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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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정말 힘든 해였고, 2022년에 벌어진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하면,

친구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냐며, 정말 힘들었겠다며,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 했다.

살면서 2022년보다 더 힘들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2023년은.. 힘들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해가 되었다.

내가 올 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한다.ㅎㅎ

 

그래도 올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생각하려 한다. 

 

2023년,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다.

 

2023년에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1월 사기 친 후배를 고소했다.

사기 친 후배를 고소했다. 3천만 원 못 받을 수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 호구되는 거라고,

우리를 건드렸으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월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니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우리는 이제 호구가 아니다.

2월 고부관계가 나빠졌다

둘 사이의 문제는 둘이 해결하면 안 될까.. 중간에서 어찌할지 모르겠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3월 아내와 관계 회복

3월이 되어서야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서에 가는 동안 그리고 나와서 집에 오는 동안 아내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뿐만 아니라 2월부터 거의 계속 그랬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내의 생일 전날이었고, 올해 결혼 10주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꼬불쳐둔 비상금으로 괜찮은 선물을 사주려고 맘을 먹었다.

 

조사가 끝난 후에 생일 선물 사주고 싶으니, 평촌으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고, 아내 입가가 실룩이는 게 보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기념일에 아귀찜을 먹었다. 매운 아귀찜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적어도 그날만큼은  예전처럼 데이트를 했다.

그래서 그날도 아귀찜을 먹고, 롯데백화점에 갔다. 비상금이 많지 않아, 생일날 귀걸이를 해주고, 결혼기념일에 목걸이를 해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목걸이까지 해줬다. 그날 4년 쓴 아이패드를 교체하려고 모은 돈까지 다 써버렸다.

 

그래도 그날부터 한 달 이상 아내가 너무 행복해했다. 세상에 자기편이 아무도 없는 기분이었는데,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걸 보니 그동안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간의 오해가 풀렸으니, 이제 다시 행복해지는 걸까 생각했다.

 

7~8월 고부관계 문제가 극에 다다랐다

방학이 되어 어머니가 올라오시자 다시 고부관계가 악화되었고,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차라리 사람을 쓰지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9월 초 아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쉬는 부부라는 예능을 보며,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매일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안아주고, 뽀뽀했다. 아내는 처음에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이고 자꾸 회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표정이 좋아졌고, 마주 반응해 주기 시작했다. 2주 만에 아내와의 사이가 꽤 괜찮아졌다.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빔프로젝터 켜서 큰 화면에 같이 보자고 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그전에는 같이 보는 거 싫어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예전처럼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9월 18일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출근길에 신호위반한 오토바이에 치어 죽었다.

이 때는 울기는 많이 울었지만, 슬퍼할 겨를 없이 장례절차가 진행되었다.

아내에게 장인장모님, 아이들 잘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되뇌었다. 

9월 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장례를 삼촌(목사님)이 진행하시면서 위로가 많이 되었다. 그래서 장례가 끝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의 감정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내가 교회를 안 나가서 벌을 주신건 가라는 생각을 했다.

 

10월 보험, 보상, 상속.. 복잡한 문제들이 괴롭혔다.

퇴직금, 보험금, 손해배상, 상속.. 행정 절차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조사하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일 2~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10월 말 사기 피의자와 대질 심문을 했다.

사기 친 후배가 사기 친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서 청주경찰서에 대질하러 다녀왔다.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지만, 이 놈은 꼭 감옥에 처넣겠다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갔더니 너무 수월하게 범행을 인정해서 허탈했다. 이 날 이후로 관심이 없어졌다.

11월 중순, 변호사 선임 계약을 했다.

형사합의문제나 손해배상 관련으로 끙끙대고 있으니, 삼촌이 변호사 선임해서 깔끔하게 끝내라고 하셨다.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해 봐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찜찜하게 남겨두지 않기 위해 소송을 하기로 했다. 이제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11월 20일, 눈이 안보였다.

오른쪽 눈이 안 보이기 전 주부터 코가 이상하게 커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월요일 오후에 회의가 잡혀서, 화요일 오후 늦게 병원 예약을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에 찰랑거리는 것이 계속 범위를 넓혀갔다.

퇴근길에 눈을 가리는 범위가 너무 빠르게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다.

안과 선생님이 검사하시고 망막박리라는 진단을 하셨다. 그리고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골든타임을 놓쳐서)

응급수술이 의미 없는 단계라고 하셨다. 이틀 후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날부터 엎드린 자세로 하루종일 있어야 했다.

 

망막박리는 실명가능성이 높은 질환이고, 왼쪽 눈까지 망막박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약 양눈이 모두 실명된다면, 당장 회사도 못 다니게 될 것이고, 한쪽눈이라도 실명하면, 운전을 못할 테니, 우리 아이들은 클 때까지 여행 한번 가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는 슬프기는 해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걱정되진 않았다.

하지만, 눈이 잘못되고,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내가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반대로 내가 그들의 짐이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내가 죽어도 씩씩한 척했고, 티 내지 않으려 했다. 눈이 망가진 후에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삶의 벼랑 끝에 몰려서, 엎드린 자세로 있으니,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엎드려서 달리 할 것도 없으니,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 말씀을 팟캐스트로 들었다.

말씀 듣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들이 내 능력이 아니라 은혜였구나..

예쁜 아내와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온몸이 삐걱댄다고 생각했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던 것이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 그것들이 사라졌지만,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자, 부정적이었던 마음이 사라졌다. 

어떻게 되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하실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된 믿음은 갈대처럼 쉬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한다.

 

첫 번째, 새벽기도로 시작하는 모닝 루틴


나의 믿음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믿음 자체에 대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작은 믿음에서 시작된 일들이 있다. 우선 하루 종일 자고 기도하고만 반복하다 보니, 피곤이 풀려서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다. 엎드린 자세로 자느라 깊이 잠을 못 자는 것도 한몫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고, 출근을 하기 시작한 후에도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한 달 내내 하루종일 기도하는 생활을 했더니, 기도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다만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다 보니 아이들에게 방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마침 목사님께서 요즘 베스트셀러인 『100일 아침 습관의 기적, 켈리 최』를 선물해 주셨는데, 이 책을 읽고, 모닝 루틴을 새로 짰다. 새벽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미라클모닝에 대한 글은 종종 봤고, 몇 번 시도도 해봤지만, 잘 안되었던 것이, 믿음이 생긴 후에는 너무도 수월하게 된다.

현재 5일 차 진행하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

24년에는 이 모닝루틴을 지켜나가면서 달라진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두 번째, 삶을 단순화하기

 

믿음에서 시작된 두 번째 변화인데, 삶이 단순해지고 있다.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던 것이 예전이었다면, 믿음이 생긴 후에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것만 고민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 잘되면 기쁘고, 안되면 잠깐 숨을 고르고, 쉬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은 대부분 돈을 아끼기 위함이 컸다.

그런 것들을 돈을 주고, 전문가를 고용했다. 

 

이렇게 삶이 단순화되자, 시간이 남기 시작한다. 이 남는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거나, 책을 읽는데 쓰게 되었다.

 

세 번째는 건강이다. 

 

한 달 가까이 출근하지 않고, 엎드려있으면서 만성 피로가 많이 줄었다. 뒤통수만 닿으면 잠이 들었는데, (물론 엎드려 자니  뒤통수가 침대에 닿을 일이 없기도 하다) 이제 잠이 안 와서 걱정한다. 

검었던 피부가 생기를 찾았고, 저탄고지를 철저히 했더니, 몸무게도 80kg 밑으로 내려왔다. 약.. 23년 만이다. 

그러고도 계속 줄고 있다. 올해 초 세웠던 목표가 80kg 이하로 감량하는 것이었는데, 11월 말까지 포기했던 목표가 이런 식으로 달성될 줄은 몰랐다. 약간 씁쓸하기도 하지만, 좋은 거니까.. 아내가 보면 놀랐을 텐데..

 

그동안 내 건강을 살피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후회가 많이 되는 만큼 앞으로 건강을 잘 챙기고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려한다. 올해 체크해야 되는 것은 수면클리닉, 자세교정, 배가 아픈 거, 당뇨, 이석증과 이명, 악관절 통증, 입냄새이다. 

이걸 다하려면, 병원비가 대체.. 그래도 지금 몸 전체를 한번 정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네 번째는 삶의 우선순위 재정립이다.

 

이전에는 그저 열심히 살았다. 삶의 목적이 없이 그냥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 가는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사는 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우선순위는 첫 번째에 하나님, 두 번째에 아이들, 세 번째에 나 자신, 네 번째에 부모님, 다섯 번째에 친척, 지인 등등이다. 돈과 일은 우선순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돈을 위해, 그리고 일을 위해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과 하루에 30분씩 놀아주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화도 좀 덜 내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준다.

 

다섯 번째는 사명감이다.

 

회사에서 차장 승진을 하면, 그 이상의 목표는 없었다. 나는 원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욕심이 생겼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당장의 사명은 내가 책임진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부모님 잘 모시는 것, 그리고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회사일이 나에게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겪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 거린다. 하지만, 참아야지. 그러나, 말로 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바뀌었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차장이 아니라 부장, 팀장, 상무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을 좀 하고 있다. 학위를 따야겠지?

 

여섯 번째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아내가 죽은 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동안 금전적인 문제로(용돈이 너무 적었다.)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나를 정말 많이 위로해 주셨다. 그 도움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전쯤 자기 전 기도를 하는데, 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 처음 취직하고, 한 달에 3만 원씩 유니세프에 후원하다가 유니세프 비리터지고, 후원을 중단했는데,

이번 달부터 월드비전에 월 15만 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이 2 + 아내 몫까지 해서 3개 계좌)

약간 부담되는 금액이긴 하지만, 난 15만 원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으니까..

그리고 아내가 죽고 들어온 보험금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다. 일부는 선교 사역에 일부는 기부하려고 한다.

이런 건 인증을 해야하

 

그리고, 심리 상담사 자격을 따려고 한다. 나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 은퇴 후에도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심리상담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2024년은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해이다.

 

좀 거창하게 적어 놓은 것 같아서 사람들이 보면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기에, 2024년 한 해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한다.

2024년 한 해 의 목표는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면, 세부적으로 계획해야겠다. 

 

아직 아내의 죽음이나, 눈이 안 보이는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문득문득 슬픔에 잠기게 하거나,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분명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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